이성희-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이성희는 우리 사회에서 유니폼(uniform)을 입은 이들의 모습, 전신상을 찍었다. 그/그녀들은 각자가 일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관자를 향해 장면으로 직립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특정 직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표상 하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유니폼은 기호이자 이미지다. 그러니까 유니폼이라는 옷이 이들의 직업과 존재의미를 증거한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자본주의의 진행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직종, 더 많은 유니폼을 원한다. 원래 유니폼이란 집단에 대하여 개인의 관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고안되어졌다. 유니폼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 상징이기도 하다.

알려져 있듯이 1930년대에 아우구스트 잔더는 당시 독일 사회의 여러 계급과 직업을 구성하는 얼굴과 용모의 집단적 특성의 기록을 지향하는 초상사진을 찍었다. 직업과 계층의 전형적 특징을 포착하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했기에 사회적 전형성을 드러내려는 의도에 따라 모델에게 포즈의 자율권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 포즈가 모델이 속한 집단의 사회적 특성을 발현하도록 조정한 사진을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델이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포즈와 표정을 사회학적으로 객관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그녀가 찍은 유니폼들은, 그러니까 예를 들어 병영을 배경으로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나 얼굴에 마치 머드팩을 한 것 마냥 위장을 하고 완전무장을 한 체로 수풀 안에서(‘군사분계선’이란 문구가 쓰여진 푯말을 뒤로하고) 포즈를 취한 한 군인들, 병원이나 한약방에서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원, 예식장도우미와 은행원, 패스트푸드점과 24시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및 주유소에서 일하는 이들, 모델하우스와 백화점, 행사장 도우미들, 아파트경비원과 야쿠르트배달아줌마, 119소방대원과 자동차정비소 직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거의 표정 없는 얼굴로(단 도우미들만은 자연스럽게 체득된 미소를 조금씩 머금고 있다)자신들이 일하는 공간, 환경을 풍경처럼 보여주면서 특정한 옷, 유니폼을 입고있다. 대체적으로 그 직업의 종사자라면 연상될 것 같은 그런 얼굴과 몸, 표정을 훈장처럼 두르고 있다. 유니폼은 잘 어울리기도 하고 더러는 그 옷에 눌려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지못해 유니폼을 걸치고 그 일을 해내야만 하는 모종의 강제성과 그 옷에 맞춰야 살아 갈 수 있는 서글픔과 지루함, 권태로움과 관습화된 몸놀림, 타자의 시선에 의해 보여져야 하는 연출이 완강하게 스며있기도 하다.

사회적 자아, 인공적인 아이덴티티의 기호를 차용한 이들의 육체는 결국 옷으로 대변된다. 의복은 다른 사회구성원과의 구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의상이 개개인의 개성과 독특함을 강조한다면 유니폼은 하나의 상징이며 착용자의 직업을 나타내는 기호이며 동시에 개성을 감추거나 나아가 억압한다. 특정한 공간, 일터와 작업장에서 유니폼을 착용한 이들의 모습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와 함께 모종의 신뢰와 권위, 전문적인 일의 수행에 따른 자부심과 고단함,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을 나름대로 연기하거나 반복적인 일의 고단함으로 인해 휘어진 몸의 한 자취가 그늘져 보이기도 하다. 어쩐지 이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유니폼이 다소 어색하거나 생경스럽거나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간극, 틈, 균열이 미세한 상처처럼 드리워져있다.

특정한 공간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하다가 근무시간이 끝나 사복으로 갈아입고 일상의 공간으로 스며드는 이들의 몸을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그/그녀는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존재성을 확보 받을 수 있다. 육체를 대신한 유니폼이 실재의 몸으로 도치되는 기이한 상황을 만나는 것이다.

 

나로서는 해병대복장을 한 인물이 책상에 앉아있는 포즈의 사진이 유독 눈에 띈다. 그는 근엄하고 엄숙한 표정-모자를 깊숙이 눌러써서 그 표정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으로 책상에 앉아있다. 각지고 뾰족한 턱과 마른 얼굴, 짧게 깍은 머리는 해병대원의 한 전형성을 재현하고 있다. 붉은 색 벽 바탕을 배경으로 태극기액자와 ‘해병대원의 긍지’, ‘해병대의 3대 정신’이 쓰여진 액자는 이 인물의 세계관까지 정물화 시켜 보여준다. 해병대는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 유니폼, 군복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해 보인다. 그러니까 한번 해병대복장은 영원한 해병대복장이다. 그들은 스스로 치안유지대나 감시단, 혹은 전우회 등을 결성해 콘테이너 박스에 작은 병영을 가설하면서 그 병영체험과 기억을 온전히 연장시키고자 한다. 지난 시절의 추억을 갉아먹으며 해병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을 유니폼으로 환생시키려는 열망은 너무 강렬하다. 제복에의 애착과 자기 신분의 연장에 대한 이 기호는 무척이나 스노비즘(snobbism)적이다.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있는 군사문화의 흔적들이 그 유니폼 위에 서식한다.

그런가하면 노동의 연예화를 통해 소비와 욕망을 자극하는 도우미는 고도소비사회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한 측면을 드러낸다. 그녀는 무릎 위로 한 뼘 정도 올라온 미니스커트와 늘씬한 각선미를 드러낸 다리, 다소곳이 배꼽 쪽으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약간 구부린 자세, 공들인 화장과 붉은 루즈, 뒤로 묶어 단정하게 치장한 머리, 그리고 그 위에 사뿐하게 얹혀진 모자를 통해 순응적이며 친절하고 겸손하며 섹시한 용모를 드러낸다. 백화점에 가득한 물건들의 유혹과 비례해 기계적인 그녀의 몸 역시 친절과 관능이 버무려진 강력한 매력의 시선의 유도한다.

사실 유니폼이란 타자에 의해 결정되는 의복이다. 유니폼 착용자는 유니폼이 만드는 질서 속에 위치하며 개인으로서의 차별성이 지워진 자리에 표준화되는 외모, 공적인 존재로 고정된다. 유니폼의 이러한 통제적 기능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명확한 분리와 신분에 대한 시각적인 증명으로 자리하며 동시에 인간의 신체에 계급을 강제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유니폼은 사회적 질서와 외모 사이의 일치를 요구하는 배타적인 시스템을 설정함으로써 옷이 신체에 있어서 규제와 통제의 장치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측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또한 유니폼은 구조화되고 위계화 된 사회의 반영으로서 국가, 계급 혹은 제도의 이상적인 응집력을 상징처럼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유니폼은 위계적으로 질서 지워진 문화의 내부와 외부의 분리, 친숙함과 이질성, 우리와 그들, 주체와 타자의 분리를 표상하고 있다.

이렇듯 유니폼은 동조성(conformity)와 차별성(discrimination)을 동시에 표상한다. 그것은 소속이나 단결을 상징하는 반면에 다른 집단과의 식별을 용이하게 한다. 이와 같이 동화와 구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성질에 지배되며 통일, 위신, 스노비즘 등의 욕구 또한 충족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유니폼이란 것이다.

이성희는 그러한 다양한 유니폼을 착용한 현대인들의 초상을 찍었다. 자본에 의한 육체의 훈육과 유니폼의 관계, 다양한 직업의 분류와 질서와 통제, 정체성, 옷에 의한 정보 등등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는 이 작업은 여전히 한 사회에서 몸을 둘러싼 투쟁과 관리가 삶의 핵심적인 문제임을 폭로한다.

 © 2020 by Lee Su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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